고희 (1550-?) 조선 중기에, 군기시판관, 유원첨사, 픙천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 제작연도 1604년
- 보물 지정연도 1982년
- 영정크기 180.9 x 111.0cm
- 제작작가 ·
- 제작방법 ·
- 소장지 및 소장인 청호리 제주 고씨 문중
- 인물소개
- 조선 중기에, 군기시판관, 유원첨사, 픙천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본관은 제주(濟州).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수문장이었던 고희는 선전관이 되어 왕을 호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당시 곽산군수이던 이경준(李慶濬)이 왕을 호종하게 됨에 따라 특지로 이경준의 직을 맡게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호조판서 김수(金睟)의 천거를 받아 공세전운사(貢稅轉運使)에 임명되어 명나라 사신들의 영접에 진력하였다. 1601년 홍원현감 재직시에도 늙고 귀가 어두운데다가 행정을 향리에게 일임하여 민간의 원성이 높다는 탄핵을 받았으나, 파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과 유원첨사를 거친 뒤 풍천부사를 역임하였다. 1604년 호종공신으로 18공신회맹록(十八功臣會盟錄)에 들었으며,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어 영성군(瀛城君)에 봉하여졌다.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관련 단체 및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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