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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백(?-660) 백제 말기의 장군, 충신(忠臣)

    • 제작연도 연도미상
    • 표준영정 지정연도 1994년
    • 영정크기 161 x 120cm
    • 제작작가 산동 오태학 (1938-2024)
    • 제작방법 ·
    • 소장지 및 소장인 부여 삼충사
    인물소개
    660년 신라의 김유신(金庾信)과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거느린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으로 진격해 오자, 5000의 결사대를 거느리고 황산(黃山 : 지금 連山) 벌에 나가서 5만의 신라군을 맞아 싸줬다. 그는 전장에 나아가기 전에 「한 나라의 힘으로 나, 당의 큰 군사를 당하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잡혀 노비가 될지도 모르니 살아서 욕보는 것이 흔쾌히 죽어 버리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고는 처자를 모두 죽이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하였다. 또한 병사들에게도 「옛날 월왕 구천(越王句踐)은 5천명으로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오늘 마땅히 각자 분전하여 승리를 거두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격려하였다. 계백의 결사대는 험한 곳을 먼저 차지하여, 세 진영으로 나뉘어 신라군에 대항하였다. 목숨을 버릴 것을 맹세한 5천 결사대의 용맹은 신라대군을 압도 할 만하였다. 그리하여 신라군과의 네 번에 걸친 싸움에서 모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신라의 어린 전사인 반굴(盤屈)과 관창(官昌)의 용맹한 전사(戰死)는 신라군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백제군은 신라의 대군과 대적하기에는 너무 적은 군대였다. 결국 5천의 백제 결사대는 모두 죽고, 계백장군도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백제의 운명을 어깨에 맨 계백의 죽음은 백제의 종말을 가져왔다. 계백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충절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계백은 부여의 의열사(義烈祠), 연산의 충곡서원, 부여의 삼충사에서 제향되고 있다. [文獻] 三國史記, 金庠基 : 階伯 等 (출처 : 전통문화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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